총 130페이지

69페이지 본문시작

02 주요사업별 소식
역사 속 식육(食肉) 문화와 동물보호
문학적으로 살펴볼 때 고려 말의 대문장가인 이규보는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단우육시(斷牛肉詩)
를 지어 쇠고기를 먹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며, 이 시에서“소는 천한 짐승으로 볼 수 없을 진대 하물며
그 고기를 먹어 내 야자 같은 배를 채우리”
라고 하여 소는 고기를 먹기 위한 가축이 아니라는 것을
강력히 표현하여 그 시대 지식인의 식육문화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식육 업무를 담당한 중앙부서는 호조의 사재감이라는 곳이었으며, 식육문화에 관하여
사시찬요에서는 2월과 8월의 삭
〔朔, 합삭(合朔)이라고도 하며, 달과 태양의 황경(黃經)이 같아지는
때)〕
내에는 계란을 먹지 말 것과 9월의 삭내에는 개고기를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하며, 10월과 12월의
삭내에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질병이 생긴다고 하였으며, 조선시대 전 시대에 걸쳐 우차법과 우경으로
인하여 농업구조상 소가 영농의 가장 큰 요소로서 중요성이 더해 갔으나, 가축전염병의 발생으로
농사용 소가 심히 부족하여 소의 도살을 엄격히 금하는가 하면 소를 도살한 자는 살인죄에 준하여
처벌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식용을 위하여 소를 잡는다는 것은 상상
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헌에 기록된 도살 금지 사례를 보면 1636년 9월(인조14
년) 한성부 소 도살 금지, 1647년 2월(인조25년) 전국 소 도살 금지, 1664년 8월(현종 5년) 전국 소
도살 금지 및 9월소 도살자는 살인죄로 처벌, 1670년 10월(현종 11년) 도축장 폐쇄, 1683년 1월(숙종
9년) 소 도살 금지, 1746년 12월(영조 23년) 소 도살 금지령 강화, 1748년 8월(영조 25년) 도살금지
및 서울소재 도축장(현방) 1개월 폐쇄, 1775년 11월(영조 52년) 소 도살 금지, 1817년 12월(순조 18
년) 소 도살 금지, 1836년 1월(헌종 3년) 서울이외 소 도살 금지를 하였습니다.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식육을 관장하는 중앙부서는 농상공부, 내무부에서 담당하게 되고, 일제시대
에는 경시청, 경무총감부, 총독부로 바뀌면서 담당하였으며, 경찰관서 소속 수의사가 도축검사를
담당하였습니다. 이 때의 도축관련 법으로는 1896년 1월 18일 법률 제1호로 공포된 포사규칙(주요
내용은 식육도살판매업, 도축장은 시도지사 경유 농상공부대신 허가, 도축장세 매월 납부 등), 1909
년 8월 21일 법률 제24호로 공포된 도수규칙(주요내용은 소·말·돼지 등의 도살은 도축장에서만
가능하도록 한정, 도축검사, 도축검사원, 검사수수료, 도살해체수수료, 도축장 지도감독 규정 등),
1919년 11월 총독부령 제184호로 공포된 도장규칙
〔주요내용은 도축검사의 현대화 기틀로 평가되며,
동 규정은 1962년 1월 20일 법률 제1011호로 공포된 축산물가공처리법(주요 내용은 도축장, 착유장,
유처리장 등의 허가제, 모든 단계의 검사는 수의사인 축산물검사원이 하도록 함 등)〕
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도축장 수와 도축두수를 간단히 살펴보면 1910년 1,089개소의 도축장에서 소 176천두,
돼지 86천두, 1915년 1,936개소의 도축장에서 소 401천두, 돼지 342천두, 1930년 1,381개소의 도축
장에서 소 215천두, 돼지 245천두로 식육의 소비량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해방 후인 1955년도
에는 634개소의 도축장에서 172명의 도축검사원이 소 103천두, 돼지 91천두의 도살을 허가 하였습니다.
76

6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